흙을 통한 관계의 미학
이관훈(ProjectSpace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임지현은 자연적인 요소인 ‘흙’이라는 것을 창작의 기본 재료로 쓰고 있고, ‘흙’이 지닌 물성 그리고 ‘흙’이 함의하고 있는 근본적인 사유에 대해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며 실존적 진실의 무한한 존재감에 대해 믿음을 지니고 있다. 이제 작가로 활동한 지 3~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작가가 되기 이전에 품었던 생각과 고민을 풀어가며 자기만의 창작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잠시 그의 조형 감각의 원천을 더듬어 본다.      

흙의 원천은 땅에서 시작하듯이,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고, 물은 원형의 기억을 갖고 있으며, 세월은 시간의 기억을 갖고 있다. 여기서 다시 ‘흙-물-세월’의 기억들이 꼭짓점을 이루고, 이것이 원형으로서 삶과 공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면, 임지현 작가가 창작의 과정에서 임하고 있는 영혼과 육신은 거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거기로부터 자신을 휘감고 있는 환영들의 잔영(殘影)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 <둥근 것>, <연기>, <연기 조각>, <숨숨>, <무제> 등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보편성은 선험적이고 원초적인 무언가가 내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과 감각이 놓여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순간순간 어떤 감정 혹은 표정, 무언가의 모습 등으로 변화하는 내면의 충동적인 요소 또한 같은 인식과 감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몇몇 요소는 관념과 추상을 넘어선 원초적 삶의 기운처럼 자연스러움을 지닌 미학으로 간주한다. 그 작품을 응시하는 순간 시간과 공간 속, 존재의 기억이 축적된 원형을 상상하게 하는 경험을 제시한다.

   

   임지현이 풀어내는 창작의 기본 개념은 ‘연결’이다. ‘연결’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이음’이다. ‘‥을 잇는다는 것’은 주체보다는 보조로, 수동보다는 능동으로, 구분 짓기보다는 관계 짓기로, 개인이기보다는 ‘우리’ 혹은 ‘더불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공간적 의미로도 유추할 수 있다. 원형의 공간 안에서 이음의 작용은 공간을 생성하는 시발점인 점이 또 다른 점과 선과 면을 넘어 공간과 연결하여 자연히 공간의 구조를 발현하게 되며, 다양하고 유기적인 형태로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낱낱의 피조물들을 잇게 하여 조형성을 낳는다는 것과 나아가 사회적 관계에서 소통 및 유통으로서 생성의미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작가는 그러한 감각의 원형이 어디서 왔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총체적 감각에 기인한다고 본다. 심리학의 학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감각(오감)은 사고(의식)에 의해 하나로 집결되며, 이 의식은 다섯 가지 감각을 총괄하는 표층 자아로서 예술의 영감을 교감하는 깊이에 따라 잠재의식 즉 무의식의 영역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이 학술적인 이론을 가정하면, 그가 창작에 몰입하는 순간의 상황은 아마도 무의식의 영역인 심층적인 자아로 향하는 과정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삶을 영위하며 인식하고 살아가는 자의식보다 훨씬 많은 능력과 자원 즉 예술적인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영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며, 또한, 각자의 주어진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잠재된 의식의 역량이 무의식에 저장해 놓고 있는지 모른다.

 

   삶의 본능에서 욕망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욕망은 ‘관계’라는 의미 안에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중 인간을 중심으로 둘러싼 자연, 사물, 공간 등과의 관계 미학은 예술의 현상학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임지현 작가의 경우도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작업 유형을 진행하며 ‘자연-사물-공간’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현상, 즉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복잡 미묘한 것들을 연구하며 실험 중이다. 그가 ‘흙’으로 작업하며 예기치 않은 기(氣; 공기, 숨)의 현상과 마주할 때가 많다. 보이지 않는 이 현상은 이론적인 사고로는 접근하기 힘들지만,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이상 보이지 않는 기의 관조자로서 출발하여 공간과 사물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조력자로 기능한다. 동시에 사유와 경험의 지경을 넓혀 자기비판과 자의식의 되돌이표가 과한 욕망을 진정시킬 수 있는 처방이 된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움 안에서 또 다른 예술적 아우라를 갖는 의미와 같다.(2017)

임  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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